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카의 가속은 패밀리카 모델들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전동화 시대에 접어들며 이 오래된 공식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기준점은 쉐보레 C8 콜벳 스팅레이다.
2020년형 기준 6.2리터 V8을 얹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 96km)까지 단 2.8초 만에 도달하는, 명실상부한 슈퍼카다. 400미터 가속(쿼터마일)도 122마일 속도로 11.2초에 끊는다. 가격은 7만 달러 초반부터 시작해, 성능 대비 가성비까지 갖춘 모델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문이 네 개 달린 평범해 보이는 패밀리카들이 이 콜벳의 가속을 나란히 따라잡거나, 심지어 앞질러버린다. 차종도 세단부터 SUV, 픽업트럭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번 시간에는 슈퍼카 콜벳보다 빠른 4도어 패밀리카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가성비로 콜벳을 잡는 전기 세단, SUV
첫 번째 차량은 테슬라 모델 3 퍼포먼스 모델이다. 먼저 놀라운 것은 가격이다. 테슬라 모델 3 퍼포먼스는 약 5만 5,000달러라는, 콜벳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값에 2.8초의 제로백을 낸다. 콜벳과 정확히 같은 가속력을, 훨씬 저렴한 4도어 세단으로 누릴 수 있는 셈이다. 400미터 가속도 125마일 속도로 11.0초를 기록해 콜벳과 대등하다. 압도적인 가속 가성비를 자랑하는 모델이다.
국내에도 익숙한 현대 아이오닉 5 N 역시 만만치 않다. 6만 달러 후반대의 가격에 2.8~3.0초의 제로백을 내며, 400미터 가속은 오히려 콜벳보다 빠른 11.0초(124.9마일)를 찍는다. 사실상 제로백은 콜벳과 동급이면서, 중고속 영역에서는 앞서는 셈이다. 두 전기 세단 모두, 실용적인 4도어 차체에 슈퍼카급 가속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픽업트럭과 정통 스포츠 세단도 콜벳 압도
가속의 반란은 세단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기 픽업트럭인 리비안 R1T는 트리플 모터 사양이 2.7초, 쿼드 모터 사양은 2.6초의 제로백을 낸다. 육중한 픽업트럭이 슈퍼카를 근소하게, 혹은 확실하게 앞지르는 셈이다. 특히 쿼드 모터는 400미터를 128마일 속도로 10.6초에 끊어, 콜벳을 뚜렷하게 따돌린다. 전기 파워트레인이 없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반면 순수 내연기관으로 이름을 올린 유일한 모델도 있다. BMW M3 컴페티션 xDrive다. 트윈터보 엔진에 사륜구동을 더한 이 스포츠 세단은, 제조사 공식 수치는 3.4초지만 실측에서는 2.8초까지 나온다. 400미터 가속 역시 124마일 속도로 11.0초를 기록하며 콜벳을 앞선다. 가격은 9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친다. 전동화 흐름 속에서도 내연기관의 저력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정점에 선 포르쉐, 그리고 달라진 시대
이 가운데 정점에 선 모델은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이다. 무려 1,139마력에 1,106lb-ft의 토크를 쏟아내며, 제로백을 단 2.1초에 끊는다. 400미터 가속은 9.5초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자동차 매체 카앤드라이버가 지금껏 시험한 SUV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으로, 콜벳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다만 가격은 16만 5,000달러로, 성능만큼이나 만만치 않다.
정리하면, 한때 슈퍼카의 전유물이던 2초대 제로백은 이제 세단과 SUV, 픽업트럭까지 폭넓게 넘보는 영역이 됐다. 특히 강력한 전기 파워트레인의 등장이 이 변화를 이끌었다. 슈퍼카만이 빠르던 시대가 저물고, 가족을 태우는 실용적인 차조차 슈퍼카를 위협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