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속도로에서 길게 이어지는 터널을 지나다 보면, 천장에 커다란 송풍기가 나란히 설치된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핏 제트 여객기 엔진을 연상시키는 이 육중한 장치가, 사실은 터널 안전과 환경을 지키는 핵심 설비다. 단순히 환기만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터널 천장 송풍기의 정체와 실제 역할, 그리고 왜 모든 터널에 설치돼 있지는 않은지 그 기준까지 자세히 짚어보도록 하겠다.

배기가스 정화부터 화재 시 배연까지
긴 터널일수록 차량에서 나오는 배기가스가 안에 그대로 정체되기 쉽다. 송풍기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이 배기가스를 터널 밖으로 내보내 내부 공기를 정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배기가스에 섞인 그을음이 터널 벽면이나 조명 기구에 들러붙어 내부가 어두워지거나 조명이 원래의 밝기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도 함께 예방한다. 이런 평상시 환경 유지 기능 외에, 만약 터널 안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또 다른 역할이 중요해진다. 연기를 강제로 밖으로 배출해 차에서 내려 대피하는 사람들이 한결 수월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돕고, 소방대의 진화 작업도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도심 지역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터널에서 배출되는 가스가 도시 대기오염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별도의 환기소를 두고 집진기와 결합해 공기를 정화한 뒤 밖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도 송풍기가 활용된다.

모든 터널에 있는 건 아니다, 등급별 설치 기준
다만 이런 설비가 모든 터널에 갖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터널은 길이와 교통량에 따라 AA특급부터 A, B, C, D까지 5단계로 구분된다. 일본도로협회에 따르면 터널 전체 길이가 10km 이상이거나 하루 통행량이 4만 대 이상이면 AA특급으로 분류되는데, 이 등급에서는 송풍기뿐 아니라 통보 설비와 소화 설비, 대피 통로 유도 설비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 그렇다고 전체 길이가 1km 안팎에 불과한 터널이라고 해서 송풍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 특성에 따라서는 이런 짧은 터널에도 송풍기가 설치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중간에 오르막 구간이 있어 내부 공기가 정체되기 쉬운 구조라면 배기가스가 쉽게 고이는 만큼 송풍기를 별도로 설치하게 된다.

1968년 구리카라 터널서 시작, EV 시대엔 사라질까
터널용 송풍기 분야에서는 파나소닉이 대표적인 취급 기업 중 하나로 꼽히며, 일본 최초로 송풍기가 설치된 곳은 1968년 도야마현의 구리카라 터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는 아직 배기가스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최근 자동차들은 1960~70년대와 비교하면 배기가스 정화 기술이 훨씬 개선됐지만, 그럼에도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물질 배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터널 내 공기 정화 설비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다만 앞으로 전기차만 도로를 달리는 시대가 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배기가스 자체가 사라지는 만큼 터널 내 송풍기의 필요성도 낮아질 것이고, 터널 벽면이 그을음으로 오염되는 일도 자연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