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게 뻗은 보닛과 짧은 뒤태, 그리고 툭 튀어나온 리트랙터블 헤드라이트까지, 누가 봐도 일본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은 전설 토요타 2000GT의 실루엣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낯설다. 뒷모습에는 마쓰다 로드스터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고, 가격표에는 ‘1000만 엔’이 적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당 차량은 진짜 2000GT가 아니라, 마쓰다 로드스터(북미 판매명 MX-5)를 바탕으로 2000GT를 빼닮게 만들어 낸 레플리카다. 이번 시간에는 억대를 호가하는 원조 명차를 로드스터로 되살려 낸 이 흥미로운 한 대를 세밀하게 뜯어보도록 하겠다.


1억 엔을 훌쩍 넘는 전설의 명차
먼저 원조인 토요타 2000GT가 어떤 차인지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00GT는 1967년 세상에 나온 일본의 대표적 스포츠카로, 토요타가 야마하와 손잡고 개발한 합작의 산물이다. 2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어 최고속도 220km/h를 냈고, 앞뒤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전용 주조 마그네슘 휠, 로즈우드로 마감한 인스트루먼트 패널 등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구성을 담았다. 길게 뻗은 보닛과 짧게 마무리한 뒤태, 이른바 ‘롱노즈 쇼트덱’ 실루엣은 지금 봐도 감탄을 자아낸다.
문제는 그 희소성이다. 생산 대수가 351대 안팎에 그친 데다, 당시 신차 가격 238만 엔은 대졸 초봉의 약 10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몸값은 더욱 치솟아, 지금은 개체당 시세가 1억 엔을 우습게 넘어선다. 2022년 3월 미국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무려 253만 5,000달러(약 4억 1,300만 엔)에 낙찰되기도 했다. 사실상 일반 소비자가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된 셈이다.


마쓰다 로드스터로 빚어낸 2000GT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마쓰다로드스터를 기반으로 한 2000GT 레플리카다. 베이스가 된 차는 1996년식 로드스터의 수동 5단 모델로, 여기에 2000GT의 유려한 실루엣을 입혔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리트랙터블 헤드라이트(팝업식 전조등)다.
마침 로드스터도 팝업식 헤드라이트를 갖춘 세대인 만큼, 그 기구를 그대로 활용해 2000GT 특유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재현해 냈다. 후면에는 2000GT를 연상시키는 테일라이트를 달았지만, 전체적인 뒷모습에는 여전히 로드스터의 분위기가 짙게 남아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실내는 로드스터의 기본 구성을 살리되 몇 가지 손길을 더했다. 특별 사양 모델에서 가져온 베이지색 가죽 질감의 시트를 적용하고, 스티어링 휠은 이탈리아 모모(MOMO) 제품으로 교체해 스포티한 감각을 강조했다. 원조를 완벽히 복제했다기보다는, 로드스터라는 소재 위에 2000GT의 낭만을 덧입힌 결과물에 가깝다.


1,000만 엔에 담긴, 가짜가 전하는 진짜 로망
해당 차량을 판매 중인 곳은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에 자리한 야마오카 오토다. 해당 매장이 중고차 경매(오토옥션)를 통해 사들인 개체로, 차량 본체 가격은 1,000만 엔으로 책정됐다. 결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값이지만, 시세가 1억 엔을 넘는 진짜 2000GT는 물론이고 3,000만 엔을 웃도는 다른 레플리카와 견주면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지로 다가온다.
실제로 매장을 찾은 손님들 사이에서는 “이런 자동차는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진품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손에 닿지 않던 전설의 실루엣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직접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차만의 매력인 셈이다.
결국 이 한 대의 가치는 ‘진짜냐 아니냐’를 넘어선 곳에 있다. 억대의 벽에 가로막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명차를, 로드스터라는 친숙한 차를 통해 손이 닿는 거리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완벽한 복제는 아닐지라도, 2000GT를 향한 동경을 현실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해당 레플리카가 던지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 명차를 소유하고 싶다는 오랜 로망이, 때로는 이렇게 뜻밖의 모습으로 실현되기도 하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