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를 둘러싼 논쟁은 성능이나 가격을 넘어, 종종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번지곤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 발언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화제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전기차 운전자들이 느끼는 이른바 주행거리 불안(range anxiety)을 두고 일종의 ‘질병(disease)’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끝냈다는 취지의 주장도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자동차 산업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미국 최고 권력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전기차를 지지하는 쪽과 회의적으로 보는 쪽 사이의 해묵은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을 지핀 셈이다.
다만 그의 주장을 실제 통계와 정책 내용에 비춰보면, 사실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정치적 수사와 실제 데이터가 뒤섞인 사안인 만큼,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사실관계를 하나씩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번 시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을 내놓았는지, 그리고 그 발언이 실제 상황과 어떻게 맞물리거나 어긋나는지를 차분히 짚어보도록 하겠다.

‘주행거리 불안은 질병’이라는 트럼프 발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여러모로 거침이 없었다. 그는 충전 문제를 걱정하는 전기차 운전자들을 두고 ‘제정신이 아니다(crazy)’라는 취지로 언급하며,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 자체를 하나의 ‘질병’에 빗댔다. 주행거리 불안이란, 목적지에 닿기 전 배터리가 방전되지는 않을까 하는 전기차 운전자 특유의 걱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기차의 짧은 주행거리와 충전 인프라를 향한 이 같은 우려를, 사실상 지나친 걱정으로 규정한 셈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끝냈다’고 밝히며, 그 조치가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25년 행정명령을 통해 전기차 보조금과 배출가스 규제,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에 부여됐던 별도의 권한 등을 겨냥한 바 있다. 전기차 확산을 뒷받침하던 각종 제도를 정조준한 것으로, 앞선 행정부가 추진하던 전기차 우대 기조와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되돌리겠다는 그의 의지가 이번 발언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취임 이후 전기차 관련 정책의 방향을 빠르게 틀어온 그의 행보를, 이번 발언이 다시 한번 압축해 보여준 셈이다.

발언과 실제 통계 사이의 간극은 어떨까?
다만 그의 주장은 실제 상황과 몇 가지 지점에서 어긋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의무화’라는 표현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는 국민에게 전기차 구매를 직접 강제하는 연방 차원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앞선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소비자에게 구매를 의무화한 것이 아니라, 배출가스와 연비 규제를 통해 제조사를 압박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목표 역시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50%를 무공해차로 채운다는 것이었다.
시장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기차가 미국 신차 판매의 7%를 차지한다고 언급했지만, 켈리 블루북의 추정에 따르면 2분기 전기차 점유율은 5.8% 수준으로, 그가 언급한 7%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수치였다. 충전 인프라의 경우, 미국 에너지부 자료를 기준으로 전국의 공공 충전 포트가 25만 개를 넘어선 상태다. 짧은 기간에 크게 늘어난 충전 시설을 감안하면, 충전 환경 역시 과거보다 한결 나아졌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참고로 연방 정부가 제공하던 전기차 세금 공제 혜택은 대당 7,500달러 규모였다. 이러한 지표들을 종합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의 일부를 과장하거나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논쟁 속에서도 짚어야 할 현실
물론 전기차가 완벽한 대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긴 이동 거리를 자주 소화하거나 충전 여건이 열악한 환경에서는, 주행거리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유효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집에서 충전이 가능한 환경이라면 최신 전기차의 성능만으로도 일상적인 주행에서 느끼는 불안의 상당 부분은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하루 이동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대다수 일반 운전자에게는, 가정용 충전만으로도 큰 불편 없이 전기차를 운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결국 이번 논란은 전기차를 둘러싼 인식이 얼마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크게 갈리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지나친 걱정’으로 보는 시각과 ‘합리적 우려’로 보는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를 순수하게 기술과 환경의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정치와 산업 정책의 문제로 볼 것인지에 따라 같은 현상도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셈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감정적인 수사를 걷어내고 데이터를 차분히 들여다볼 때 비로소 전기차의 현주소가 제대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기차 정책이 정권에 따라 방향을 크게 달리해온 만큼, 이번 발언이 앞으로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