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한 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통상 4년 안팎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긴 여정 동안 시장의 흐름은 빠르게 바뀌고, 어렵게 완성한 신차가 정작 출시 시점엔 이미 한 발 늦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026년 7월 30일, 닛산 브랜드가 바로 이 ‘개발 속도’라는 해묵은 과제에 정면으로 답을 내놨다.
닛산의 답은 다음과 같다. 새 개발 프로세스인 ‘PCS-T’를 도입해 기존 약 50개월에 달하던 개발 기간을 최대 20개월가량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시험대에는 부활이 예고된 차기 스카이라인이 이름을 올랐다. 이번 시간에는 닛산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 시간을 이토록 줄여 내려는지, 그 전략의 속을 하나씩 세밀하게 뜯어보도록 하겠다.

신차 개발,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커지는 위험
닛산이 개발 기간 단축에 나선 배경에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이 자리한다. 전동화의 가속, 환경 규제의 잦은 변화, 보조금 정책의 향방, 그리고 갈수록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요구까지, 자동차를 둘러싼 조건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이런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닛산 제1제품개발본부의 야마구치 카즈유키 집행임원은 이날 설명회에서 “오랜 기간을 들여 개발하면 차가 세상에 나오는 시점이 한참 뒤로 밀려 라이프사이클이 길어지는 과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발이 길고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개발비와 각종 비용,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이는 결국 판매 가격 상승이라는 위험으로 되돌아온다.
여기에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기차(NEV) 개발 경쟁이 격화되면서 속도 경쟁의 압박은 해외 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닛산이 내건 목표는 분명하다. “더 빠르게, 더 경쟁력 있는 비용으로, 더 매력적인 차를 고객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디지털과 피지컬, 두 단계로 나눈 개발 프로세스
이번에 도입된 ‘PCS-T(Product Creation System-Transformation)’는 개발 과정을 크게 디지털 페이즈와 피지컬 페이즈, 두 단계로 나눈 것이 핵심이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디지털 페이즈에서는 차량 기획부터 설계 구상까지를 진행하며, 실물 대신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해 성능을 검증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시책이 맞물린다. 우선 목표 설정 방식을 바꿨다. 모든 경쟁차를 전방위로 겨냥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철저히 사용자 관점에서 ‘닛산다움’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한 디자인 결정 시점을 앞당기고 프로세스를 간소화했으며, 프로젝트 책임자의 권한을 명확히 해 의사결정 속도를 끌어올렸다.
후반부의 피지컬 페이즈는 시작차를 통한 성능 검증과 품질 확인, 그리고 생산 공장에서의 시험 생산이 이뤄지는 단계다. 이 과정에는 AI와 DX(디지털 전환) 기술이 대거 투입된다. VR을 활용해 실물 목업을 제작하기 전에 미리 확인하고, 디지털 트윈을 구축해 실험 정밀도를 높인다. 평가 계획 작성부터 판정, 리포트 작성까지 AI로 자동화하며, 자율주행 기술을 응용해 밤낮으로 끊김 없이 실험을 이어 가는 방식까지 도입했다.

한 방에 모여 결정, 차기 스카이라인 첫 시험대 올라
프로세스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조직의 변화다. 닛산은 설계와 조형, 기획, 생산, 구매 담당을 한 공간에 모으는 이른바 오오베야(大部屋·큰 방) 방식을 새로 들였다. 부서 간에 서류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관련 인력이 같은 자리에서 곧바로 논의해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야마구치 집행임원은 “큰 방에 다 같이 모이면 일대일로 공을 주고받는 캐치볼이 아니라 모두가 둘러앉은 대화가 되어, 매우 빠르게 일이 정해진다”고 표현했다. 기존의 삼권분립식 체제(PD·CPS·CVE)도 2층 구조로 재편해 의사결정 단계를 줄였다.
이 같은 전략의 효과를 실제로 증명할 첫 주자로 낙점된 모델이 바로 부활이 예고된 차기 스카이라인이다. 닛산은 이를 파일럿 프로젝트로 삼아 새 프로세스의 유효성을 검증한 뒤, 앞으로 선보일 모든 신형차를 PCS-T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2025년 5월 경영 재건 계획 ‘Re:Nissan’을 통해 스카이라인을 비롯해 글로벌 C세그먼트 SUV, 인피니티 컴팩트 SUV에 이 프로세스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목표 수치도 함께 제시됐는데, 새롭게 시작하는 리드 프로젝트는 37개월, 뒤이어 진행되는 후속 프로젝트는 30개월 만에 개발을 마친다는 구상이다.

속도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 닛산의 성적표는?
결국 PCS-T는 단순한 공정 개선을 넘어, 개발의 속도 그 자체를 닛산의 경쟁력으로 삼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디지털을 앞세워 앞단을 압축하고 AI와 조직 개편으로 뒷단의 낭비를 걷어 내, 약 50개월이던 개발 기간을 30개월대까지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그 성패를 가늠할 무대가 차기 스카이라인인 만큼, 이 신형 모델이 얼마나 빠르고 완성도 높게 세상에 나오느냐가 닛산 개혁의 첫 성적표가 될 전망이다.
